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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하는 지구에 사과 나무 심기

하루하루 기분이 늘 오락가락한다.

한마디로 심기가 불편하다.

 

믿었던 SNMP기능은 정상 필드 테스트 결과 정상 펑션이 어렵고,

애플 앱스토어에서는 벌써 3번째 리젝을 당했다.

이젠 놀랍지도 않다.

 

한참 힘든 시절은 항상 10월이면 찾아온다.

 

한삽만 더 파면,

진짜 우물이 솟아날 수 있을까?

 

 

<< 출처 : http://cafe.naver.com/suhui/7750702 >>

 

 

나는 지금 멸망하는 지구에 사과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이글을 쓴다.

오랫만에 “위기극복, 목표달성, 비젼, 동기 부여”의 주제로 강의 제의가 들어왔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내 전공과목이다. ㅋㅋ)

나도 하루하루 ‘멸망하는 지구에 사과나무를 정말 심어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는데, 사람들 앞에서 이런 주제로 이야기 한다는게 좀 우스운 상황여서 난생 해본적 없는 ‘고사(사양)’라는 것을 해봤다.

 

영업 사이드에서 이야기 하는 동기부여는 아주 간단하다.

 

    “100만원을 벌고 싶으세요? 그렇다면 얼마의 매출을 하셔야 해요?

    그 매출을 위해서는 몇명의 사람들과 계약을 해야하나요?

    그 계약을 하기 위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몇통의 전화를 하셔야 하나요?

    다 아시네요~ 그럼 하세요~!!! 다음달 당신의 통장에는 100만원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개발 사이드의 이야기는 조금 복잡해진다.

다 만들어진 것 같은데, 작동에 필요한 각각의 부분에서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한곳에서 조금 수정을 하면, 다른 부분과의 결합부분이 조금 어긋나고, 이것이 확산되다보면

정상작동을 하지 않는 불량이 된다.

 

 

각설하고 평생을 따라다닌 이 말,

“내일 지구에 종말이 온다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17세기 합리론의 주요이론가인 네델란드의 유대인 철학자인 ‘스피노자’가 이야기 한 것으로 알려진 이 말…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자신의 일에 충실하자’는 이 말은 우리 어머니가 내게 참 많이 했던 말씀이기도 하다.

마치 내게는 족쇄같은 말이기도 하고…

 

열심히 사과나무 심었는데, 진짜 지구가 멸망하면 난 뿌듯하게 종말을 맞이할까? 허망하게 종말을 맞이할까?

어짜피 종말 이후에 사과나무도 남아있지 않을텐데, 굳이 해야할 이유가 바로

“위기극복, 목표달성, 비젼, 동기 부여”의 궁극에 목적이다.

 

사람들이 쉽게 내 뱉는 말 중에,

‘최선을 다한다.’에서 최선은 가장 좋고 훌륭함. 또는 그런 일을 뜻한다.

 

‘가장 좋다’는 것 자체가 모호한 의미이다.

기준이 모냐? 이거지…

가장 좋다는 것은 선택할 수 있는 사항들 여럿 가운데에서 하나라는 건데,

대체 선택할 수 있는 사항들은 무엇이였냐? 하는 것이 늘 문제라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멸망하는 지구에 사과나무를 심는 심정이라는 것이다.

 

내일 멸망할 것을 뻔히 아는데 사과나무를 심는 다는 것은,

뻘 짓(뻘쭘한 짓의 줄임말로 주로 군대에서 일과시간에 일과와 관련 없는 일을 시간 때우기 목적으로 하는 것. 허튼 짓, 바보같은 짓, 쓸모없는 짓을 뜻 함)이다.

나는 이것이 아주 강한 현실의 부정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게다가 스피노자도 루터 마틴도 과수원 지기나 과수원 운영자가 아니고 철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사과나무를 사례로 든 것을 종교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는 이들도 있긴 하지만, 나는 종교인이 아닌 이유로 좀 순수하게 이것을 해석하고 싶다.

 

희망 이라고…

 

 

 

 

 

위기, 위험이나 위협을 느껴면, 그 다음 상황은 움추려든다.

복지부동이라는 단어가 바로 이 위기사항에서 일반적인 사람들의 반응이다.

위험은 가만히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사라지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가만히 있다보면 도태되어버릴 수도 있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어떤 사람은 부지런히 걷고 있고, 어떤 사람은 열심히 뛰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하늘에서 황금낙하산을 펼치고 뚝 떨어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그렇다.

 

 

 

출처: http://blog.ohmynews.com/formyangel19/tag/%ED%9D%AC%EB%A7%9D

 

 

 

우리가 어떤 희망을 보게 되는 순간. 가만히 있는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을 잡기 위해 어떤 형식이 되었건 간에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희망이 없다면, 최소한 그 희망을 보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해야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점심을 먹은 이유와 같은 이유이고, 내가 이따가 저녁을 먹어야 하는 이유와 같은 이유이며,

그것이 내가 태어나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이며, 내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될 것이다.

 

우리는 정말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사과나무를 심어야 할까?

지구의 멸망에 순간에 번쩍이는 섬광을 보면서도 이 사과나무 아래에서 뛰놀 아이들을 생각할 수 있다면,

꾀나 뿌듯할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아주 찰라의 순간일지라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라는 자부심이 있을 것 같다.

다들 힘 냅시다.

 

 

이천십오년구월이십이일 고함으로 알려진 이 씀